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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태원 아들 자폐아 위암 딸 가족 대마초 사건
김태원은 학창시절부터 뛰어난 기타실력으로도 유명했엇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도균과 신대철을 보고난 이후 악기의 수준이나 퍼포먼스 에서 패배감을 느끼게 된 그는 기타실력보다는 작곡자로의 변신을 꾀하게 됬다고 하죠.

 

처음 부활은 부드러운 발라드 성향의 음악을 하면서 백두산과 시나위하고는 다른 음악스타일을 걷게 되는데요. 보컬인 김종서의 탈퇴이후 어려움을 겪던 그들은 새로운 보컬 이승철을 영입하게 됩니다.

 

 

이승철의 외모가 록커답지 않게 곱상하다는 이유로 다른 멤버들이 반대를 하였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태원은 당시 김수철의 바이브레이션을 좋아했는데 이승철이 그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승철 영입을 강력히 추진했다고 하죠.

 

 

 

 

이에 이승철도 고가의 장비를 사들고 가면서까지 부활에 들어가고 싶어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이승철을 영입한 부활은 1986년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등으로 30만장 이상의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지만 영광도 잠시, 1987년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2집 앨범은 결국 실패하고 마는데요. 이후 이 부분에 대해서 김태원은 "많은 인기를 얻어 자만심 때문에 대마초에 더 빠져들었다"라고 고백을 하기도 했었죠. 이승철의 솔로활동으로 점점 잊혀져 가던 부활은 운명의 보컬을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3집앨범 녹음 도중 사망한 김재기 였습니다.

 

 

김재기는 사랑할수록을 한번 불렀다고 하는데요. 당시 김태원은 "한 번에 녹음을 끝내는 사람은 김재기와 이소라밖에 본 적이 없다"면서 그의 실력을 극찬했다고 하죠. 김재기가 참여한 `사랑할수록`이 포함된 앨범은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음악적인 성공을 거둔 그이지만 한편으로 어려운 가정사로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요.

 

 

 

 

그당시 장애를 가져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던 둘째 아이를 위해 부인과 아이는 필리핀으로 가서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김태원은 큰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고통과 갈등을 겪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곤 햇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는 김태원은 그런 아이들을 위한 일을 앞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히기도 했었죠.

 

 

또한 자신도 위암수술을 받은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었죠. 하지만 딸은 출중한 노래실력을 방송을 통해 뽐내기도 했었는데요. 불후의명곡에 출연해 마더를 열창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큰화재를 모으기도 했었죠. 아빠를 닮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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